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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정보

관현악의 마술사 라벨에 대해 알아보자.

by H.S Studio Academy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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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제프 모리스 라벨 (Joseph Maurice Ravel)

출생: 1875 3 7~ 1937 12 28(향년62).

국적: 프랑스 시부르

직업:작곡가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화성을 배우며 음악의 기초를 쌓았고, 14세 때 파리 음악원 피아노과에 입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원에서는 성적이 영 좋지 못했는데, 화성, 피아노 과목에서 낙제를 당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20세의 나이로 음악원을 자퇴

이 때부터 그가 작곡한 곡들은 충분히 그의 재능을 보였고, 2년 후 다시 파리 음악원 작곡과에 재입학. 이 때 가브리엘 포레를 사사하고, 에릭 사티와 같은 비주류 음악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고

이 당시 작곡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를 알리게되었다.

그리고 26세, 그는 로마 대상에 도전하는데, 첫 도전에는 2등, 이후 연달아 본선에서 탈락, 그리고 마지막 도전에는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후에 그가 충분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대상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그는 파리 음악원을 떠나게 된다.

이런 일이야 이단자적이라고 표현될 정도였던 그의 혁신적인 음악이 인정을 못 받아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이 때의 라벨은 '물의 유희', '현악사중주 F장조' 등으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였다는 것. 당연히 이 사건은 언론의 지탄을 받았고, 파리음악원 교장의 해임 등으로 프랑스 음악계에 대격변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대한 사과로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지만, 라벨은 이 훈장을 거절한다.

이후 그는 발레 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관현악곡 '스페인 광시곡',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 '소나티네' 등을 발표하면서 그의 창작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에 지원했으나 탈락하고 운전병으로 입대하지만 부상으로 얼마안가 제대하게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드뷔시도 타계한 이후에, 라벨은 명실상부 프랑스 음악계 최고의 거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창작 활동이 진척을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1차대전 참전 후의 충격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

그러나 쿠프랭의 무덤 을 작곡하면서 극복한다. 전후 프랑스 음악계에서 6인조(Les Six)의 약진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재기한 라벨은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같은 화려한 테크닉의 피아노협주곡과, ‘라 발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볼레로를 발표

볼레로는 디지몬을 안다면 들어봤을것이다. 한번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d2wZNWzCsMk

 
라벨은 치밀하고 정교한 작곡가이며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킨 근현대 화성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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